사카이의 위인

센노리큐
"다도"를 집대성한 위대한 다인

다인 센노리큐
1522-1591

 

사카이의 유복한 생선 도매상 집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다도를 가까이 접해 왔고, 다도의 제일인자 다케노 조오 등에게서 배웠다. 스승의 가르침은 종래의 의식적ㆍ호화로움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선의 가르침과도 통하는 "와비차"라는 스타일. 쓸모 없는 군더더기를 없앤 검소한 자세로 한 잔의 차를 통해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었다. 이를 이어받은 리큐는 다두(차의 스승)라는 직책으로 당시의 권력자를 섬기면서 다도를 집대성했다. 그 위업으로 인해 리큐는 "다성(The great tea master)"이라 불리었다. 그의 사후에 자손들이 리큐을 시조로 한 3개의 다도 유파를 만들었고, 리큐의 가르침은 지금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 // BLOCK END }}

사카이 리쇼노모리

사카이의 역사와 문화를 즐기면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시설. 리큐의 생애를 소개하는 뮤지엄 "센노리큐 다도관"을 비롯해 리큐가 만든 다실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다이안(국보)"을 복원한 "사카이 다이안"도 있으며, 실내를 견학할 수도 있다.

{{ // BLOCK END }}

센노리큐 저택 터

"사카이 리쇼노모리"에 인접한 센노리큐의 저택 터. 건물은 현존하지 않지만, 리큐가 동백나무 재를 넣어서 다도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우물 "동백나무 우물"이 남아 있다.

{{ // BLOCK END }}

사카이시 다실 신안

사카이시 박물관에 병설되어 있는 다실. 근대 스키야 양식(다실풍 건축)의 명장 오기 로도가 1929년에 건축. 이후에 도쿄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의자에 앉는 “류레이시키” 스타일로 부담 없이 녹차와 작은 과자를 즐길 수 있다. 작은 과자의 모양은 리큐가 애용했던 도장을 표현했다.

{{ // BLOCK END }}

 

요사노 아키코
여성의 자유와 자립을 주장한 열정의 시인

시인 요사노 아키코

1878-1942

 

사카이의 전통 과자 상인집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시인 요사노 뎃칸. 22세에 시집 "흐트러진 머리"를 발표. 여성이 자아나 성에 관해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시대에 뎃칸과의 사랑을 자유롭고 관능적으로 노래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정열의 시인"으로 불렸으며, 시 외에 고전 연구와 평론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뜻이 일치한 사람들과 함께 일본 최초의 남녀공학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크게 노력했다.

{{ // BLOCK END }}

사카이 리쇼노모리

사카이의 역사와 문화를 즐기면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시설. 시인 요사노 아키코의 작품과 생애를 소개하는 "요사노 아키코 기념관"이 병설되어 있다.

{{ // BLOCK END }}

요사노 아키코 생가 터

유복한 전통 과자 상점이었던 요사노 아키코의 생가 터. 생가를 노래한 시 <바다가 그리워 멀리 파도소리 헤아리다 소녀가 되어 부모님의 집>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 // BLOCK END }}

군슈도

1887년에 창업한 전통적인 향 전문점. 19세기 말에 지어진 점포 건물은 전통적인 사카이 상인 건물의 풍격을 보여 주고 있다. 요사노 아키코의 생애를 드라마로 제작했을 때 그녀의 생가인 전통 과자점 "스루가야"의 촬영지가 되었다.

{{ // BLOCK END }}

 

교키
평생을 포교와 사회사업에 바친 명승

승려 교키
668-749

 

15세에 출가. "널리 민중을 구한다"를 신조로 삼아 민중 포교와 사회사업에 평생을 바쳤다. 49개의 사원 건립 외에도 다리나 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의 건설, 토목공사도 맡았다.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사찰 "도다이지 절"의 대불 건립에 기여해 승려의 최고 지위인 대승정에 임명되었다.

{{ // BLOCK END }}

 

에바라지 절

교키가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 직접 세운 사원. 본존은 지혜를 관장하는 문수보살. 매년 입시 시즌이 되면 본당 벽이나 기둥에 "합격 기원"이라는 글이 적힌 손수건이 가득 봉납된다.

{{ // BLOCK END }}

아구치 신사

사카이의 바다를 지키는 유서 깊은 신사. 경내에는 교키가 세운 사원도 있고, 그 통칭이 "오데라"였기 때문에 지금도 현지 주민들은 "오데라상"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 // BLOCK END }}

 

가와구치 에카이
불교의 원전을 찾아 티베트를 탐험한 승려

승려ㆍ불교학자ㆍ탐험가
가와구치 에카이
1866-1945

 

20대에 출가했지만 번역된 불전에 의문을 느껴 범어 원전과 티베트어 번역 불전을 입수하기로 결의한다. 33세에 당시 쇄국 중이던 티베트를 향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입국해 방대한 경전과 자료를 수집했다. 그 후에도 다시 티베트에 들어가 불교 보급에 평생을 바쳤다. 당시의 경험을 정리한 "티베트 여행기"는 학술적 가치와 함께 탐험기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 BLOCK END }}

 

사카이 시립 도시상공인 가옥 역사관 세이가쿠인

수험도 사원으로, 근세에는 데라고야(서민의 자녀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사설 교육기관)로서 서민들에게 개방되어, 이 근처에서 태어난 가와구치 에카이도 여기서 배웠다. 관내에는 당시의 책상이나 문구, 교과서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

{{ // BLOCK END }}

 

사카타 산키치
불굴의 정신으로 한 시대를 만든 전설의 기사

장기 기사
사카타 산키치
1870-1946

 

사카이시 서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가업을 도우면서 독학으로 장기의 기량을 연마하였고, 이후 프로로 전향했다. 도쿄가 중심이던 장기의 세계에 반골정신을 불태워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승부 스타일로 경이적인 힘을 발휘했다. 라이벌 세키네 긴지로와의 명승부는 특히 유명하다.

{{ // BLOCK END }}

 

헤노마쓰 인권 역사관

사카타 산키치 관련 유품과 사진 자료 등을 모은 "사카타 산키치 기념실"이 마련되어 있다.

{{ // BLOCK END }}

あなたは旧式のブラウザをご利用中です
このウェブサイトを快適に閲覧するにはブラウザをアップグレードしてください。